「유난한 도전」을 읽고

2023. 12. 11. 21:50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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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한 도전」(정경화, 2022)을 읽고
 

1. 바위로 계란 치기

나는 회사를 추상화해서 이해할 때 사람에 비유해서 생각하곤 한다. 회사를 사람이라고 한다면 순환하는 자본은 혈액일 것이다. 자본을 펌핑하는 심장은 Revenue를 만들 수 있는 유무형자산 등일 것이며 자본의 유동성은 혈액의 점도를 의미할 것이다. 자금 흐름이 경색되는 것은 말초 혈액이 막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완전히 부도가 나는 것은 혈액순환이 완전히 정지하여 죽음에 이르는 일일 것이다.
 
대기업 경영과 스타트업 경영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경영은 다 큰 어른의 혈액 순환을 관리하는 일이라면, 즉 막힌 혈액을 뚫어주고 증자로 수혈을 해주는 일이라면, 스타트업은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의 혈액 순환을 관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혈행을 관리하는 것보다 혈액이 흐를 혈관 길을 뚫어주는 것이 우선일 때도 있다고 여긴다. 
 

태아의 혈액순환(출처: MSD 매뉴얼)

 
태아의 혈액 순환에는 성인에게 존재하지 않는 배꼽동/정맥(Umbilical artery/vein)이나 동맥관(ductus arteriosus) 등이 존재하는 것은 스타트업의 자금 확보와 순환 방식이 성인의 것과 차이가 크다는 것을 상징한다. 따라서 어머니에 해당하는 자본 공급처(VC 등)가 필요하며, 출생할 때까지 고유의 혈액순환 시스템을 완성해놓지 않는다면 death valley에 빠져 유산할 것이다.
 
스타트업과 대기업은 조달할 수 있는 자본의 규모와 인프라 측면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에, 같은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이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일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몸집이 작은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듯이,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토스 팀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를 상대할 수 있었던 무기는 "미친 속도"였다. 5일을 주기로 한 스프린트(sprint)로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해결하였으며, 수익 모델이 분명하지 않아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일명 "다다다다 전략" 이라고 하는 작은 수익 모델을 빠르게 시도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과연 관료화된 대기업 조직에서 이러한 유연한 전략을 취할 수 있을까?


2. 제갈량의 실수를 범하지 말자

토스 이승건 대표가 토스 팀 임금제도를 개편한 후 책상에 써붙인 글귀이다. 여태껏 제갈량을 좋은 전략가 내지 삼국지 최고의 모사로서 표현한 글은 많이 보았어도, 그의 실수를 강조한 문구는 생소했기에 이 문장의 속뜻을 생각해 보았다. 제갈량이 천재였어도 삼국지의 승자는 결국 위나라가 아니었는가.
 

제갈량은 천재였지만 위임을 못했기 때문에, 전투에서 이겼을지언정 전쟁에서는 졌다. 반대로 조조는 사마의 같은 천하의 좋은 인재를 찾아다녔고 충분히 위임했다. 사마의는 힘과 역량을 갈고 닦아 결국 천하를 통일했다.
최고의 전략가 제갈량은 천재였기 때문에 전투에서 이길 수는 있었지만, 위임을 못했기 때문에 전쟁에서는 졌다.

 
토스의 CEO 이승건은 치과 의사 출신 창업가로, 치과 개원을 앞두고 창업의 길로 뛰어들어 10년 간 고군분투한 끝에 현재의 토스를 일궈 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승건이 슈퍼맨이었냐고 묻는다면, 당연하게도 아닐 것이다. 토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CEO가 슈퍼맨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개발, 마케팅, 금융 등 적재적소에 출중한 능력을 가진 인물을 배치했기 때문이었다. 이승건에게는 그러한 출중한 능력을 가진 인물을 잘 알아보는 눈과, 그들을 이끄는 리더십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출중한 능력을 가진 인물을 어떻게 내 사람으로 만드는가? 훌륭한 리더십과 화려한 언변도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도 한쪽 분야에 대해 깊이가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천재적인 하드웨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워즈니악이라는 훌륭한 동업자를 구할 수 있었다.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스스로 폐차장에 가서 낡은 자동차 부품을 구해 자신의 자동차를 개조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컴퓨터 초창기 시절에는 BASIC을 며칠 만에 밤을 새 가며 마스터하고 게임을 만들어 잡지회사에 매각하였다. 헬스케어 산업을 이끌 의사 창업가로서 가장 필요한 것은 내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전공 지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3. 좋은 프로덕트란

비바리퍼블리카는 토스의 성공 이전에 "울라블라"로 실패를 한 번 맛보았다. 신개념 SNS 플랫폼이었던 울라블라는 풀고자 하는 문제가 명확했고, 팀의 구성원도 좋았으며, 실행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프로덕트를 만들었기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책을 읽고 유튜브에서 울라블라를 소개하는 아래 짤막한 영상을 보았는데, 어플을 최선을 다해 만들었음을 느꼈지만 시장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사업의 영역은 노력만큼의 return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으며, 시장을 잘 읽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cA095AJJHA

 

우리가 풀고 싶은 문제에 몰두한 나머지, 사람들의 공감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었다
- 이태양(비바리퍼블리카 초창기 개발자)

 
이 책에서 시장이 원하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방법을 두 가지 배울 수 있었다. 첫째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기법이다. 이는 완성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이 아니라, 초기 고객의 반응을 샅샅이 살피면서 끈임없이 상호작용하고 agile하게 일을 수행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는 고객에게 "제대로 일하는 팀"이라는 것을 각인시킬 수 있으며, 좋은 팀원을 나의 팀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토스 팀은 이러한 기법으로 훌륭한 디자이너 남영철을 얻을 수 있었다. 둘째는 AARRR 기법이다. 이는 실리콘 밸리에서 스타트업이 잘 성장하고 있는지와 앞으로 성장할지를 가늠하는 기법인데, 토스에서는 다섯 가지 지표를 활용하였다.

  • 획득, Aquisition = 광고나 입소문을 타고 토스에 유입된 새로운 사용자
  • 활성화, Activation = 토스에 처음으로 자신의 계좌를 등록하고 서비스를 이용한 사용자
  • 유지, Retention = 한 번 활성화한 이후 다시 토스 서비스를 이용한 사용자
  • 수익, Revenue = 서비스를 통해 토스가 창출한 이익
  • 추천, Referral = 토스를 써본 뒤 친구에게 추천해준 사용자

다섯 가지 지표 중 낮은 것이 무엇인지를 분석하면 현재 만들고 있는 프로덕트에서 어떤 것이 부족한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토스의 경우 activation이 적었기에 대형 시중은행을 토스 앱에 붙여 계좌 등록을 쉽게 만드는 해결책을 찾았다.
 


 
「유난한 도전」은 초창기 스타트업일 때부터 유니콘이 될 때까지의 토스 팀을 마치 비바리퍼블리카 팀원 한 명이 되어 지켜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경영 전략적인 측면 이외에도 마인드셋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도전에 대한 마음가짐 등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Ose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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