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AR 해커톤 후기 + AR에 관한 생각들

2024. 2. 25. 23:56비즈니스/헬스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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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무박 2일로 진행되었던 의료 AR 해커톤(2024.02.24~2024.02.25.)에 다녀왔다. 해커톤이라는 형태의 대회에 참가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 경제경영 학회를 같이 하는 친구들이 개인 자격으로 여러 명 참가했고, XREAL이라는 서울대 XR/메타버스 학회에서도 여러 명이 와서 메디컬 분야와 AR 분야의 콜라보 느낌으로 진행되었다.

 

 

다른 해커톤 대회와 조금 달랐던 점은, 이번 해커톤은 기술 구현 정도도 중요하지만 비즈니스적인 영역도 고려하여 "현실적인 BM"을 짜야 한다는 것이었다. 꼭 미니 IR 덱을 만드는 것과 같았다. 의료기기는 적당한 비즈니스 모델을 잡기가 쉽지 않다. 시장 진입의 주요한 요소로 고객 만족도나 마케팅 전략이 중요한 타 분야와 달리, 의료기기는 "규제" 와 "정책"을 1순위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약처나 FDA의 의료기기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준수할 것이며, 보험수가를 어떻게 받아낼 것이고 등의 고민이 의료기기 비즈니스를 하는 데 필수적이다.

 

스프링캠프에서 인턴을 하며 여러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봤었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이러한 "정책 돌파 능력" 이라고 느꼈다. 최초로 DTx 승인을 받은 페어테라퓨틱스가 파산한 이유가 보험수가를 받기도 전에 상장을 해 버려 제대로 된 수익 구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승인"이나 "보험수가"는 헬스케어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들이며, 여기에 "특허"까지 더해진다면 크게 기술적으로 고난도인 비즈니스가 아니더라도 충분한 해자를 형성할 수 있다.


AR은 주류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까?

몇년 전쯤인가, VR이 한창 유행했을 때가 있었다. 롯데월드에 가면 후렌치레볼루션이나 자이로드롭을 탈 때도 VR을 착용하고 탑승하는 이벤트를 하기도 했었다 (물론 안 끼고 타는 것보다 훨씬 재미 없었다 😅). 그때까지만 해도 VR은 혁신적이고 신기한 기술이었으며 주류 시장으로 넘어갈 것으로 다들 예측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몇 년간 VR 시장은 잠잠했다. 왜 그랬을까?

 

https://cascade.tistory.com/29

 

「제프리 무어의 캐즘 마케팅」을 읽고

헬스케어 비즈니스 섹터를 조사하다 보면,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고 초반에 큰 투자를 유치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결국 주류 시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팀들이 많이 보인다. 비단 헬스

cascade.tistory.com

 

지난 번 글에서 제프리 무어가 주장한 "캐즘"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면 Innovator들과 Early Adoptor들까지 기술을 구매하는 것은 쉬우나, 주류 시장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캐즘" 을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Early Adoptor까지 시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상품들도 사소한 이유로 캐즘에 빠진다. 대표적으로 세그웨이는 기술력이 대단했지만, "계단을 오르지 못한다"는 사소한 이유로 캐즘에 빠져 버렸다. VR 기기도 마찬가지로, 기술 덕후들이나 혁신가들은 구매했을지 모르나 주류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보긴 어렵다. 내 생각에는 VR 기기가 캐즘을 넘지 못한 이유에 해당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두 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가상현실"이라고 부를 정도로 현실감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당시의 VR 기기는 고개를 돌렸을 때 디스플레이가 따라 돌아가는 정도의 구현이었으며 입체감도 느껴지지 않았고 일부 체험자들은 어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요즘 유튜브 보면 휴대전화 자이로센서를 이용해서 영상 자체를 다양한 각도로 보게 해주는 기능도 생겼다. VR 기기는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서 구현이 가능한 똑같은 기능을 쓰기 위해, "고글" 이라는 불편감을 감수해야 하며, 현실감도 일반 디스플레이에 비해 유의미하게 다르지 않았다.

 

둘째는 사용자와 인터랙션이 충분하지 않았다. 오로지 인풋으로 받는 모달리티는 자이로센서와 위치 정보였기 때문에, 사용자는 기기와 원하는 상호작용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 게다가 VR은 사용자의 현실 시야를 가려버리기 때문에 현실 공간과 단절된 채로 가상 공간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정도로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가상 공간에 사용자가 그렇게 오래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VR이 잠잠해지고 애플 비전프로나 홀로렌즈를 필두로 하여 XR/AR 등 공간 컴퓨팅 기술이 요즘 뜨고 있다. AR이라는 분야는 과거의 VR과 무엇이 본질적으로 다를까? 만약 같은 단점들이 있다면, AR 기술도 Early Adoptor에서 주류 시장으로 넘어가는 캐즘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비전프로가 20만 대 판매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는데, 이는 AR의 미래를 담보해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구매한 20만 명은 모두 innovator 혹은 early adoptor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규모는 크다. 단순한 기술 덕후뿐 아니라, 이번 구매에는 애플 덕후나 디자인 덕후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AR이 주류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요건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가격이다. 비전프로 한 대 456만원, 홀로렌즈 한 대 550만원의 가격으로는 주류시장으로의 진입이 절대, 다시 말해 절대 불가능하다. 우리 팀도 이번 해커톤 때 550만원짜리 홀로렌즈가 100만원으로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을 상정하여 BM을 짰는데, 가격이 현재 휴대폰 수준으로 떨어져야 시장침투력이 생긴다고 봤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하드웨어이다. 앞서 VR기기와도 공유되는 특성이겠지만, 고글이라는 형태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장점으로 작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기기가 무겁다면 이 단점은 더욱 부각된다. 홀로렌즈나 비전프로는 아직 무겁다. 이것이 개선되려면 하드웨어 자체가 발전해야 하는데, 이것이 언제쯤 가능할지 의문이다.

 

물론 이제까지 신기술을 몇 개나 주류시장에 올려 놨던 애플의 행보와 경영실력을 보면, 비전프로도 잘 팔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긴 하다. 그리고 위에 제시한 두 가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아니면 해결하지 않더라도 대중을 설득할지 지켜보고 싶다.

해커톤의 진행

우리 팀의 주제는 [진료 상황에서 도움을 주는 AR] 였다. 기술을 개발하기 전 선행되어야 하는 질문은 "왜 AR이어야 하는가?" 라고 생각했다. AR의 본질은 무엇인지 팀원들과 토의해 보았으며, 우리는 "손을 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hand-tracking 기술에 착안하였다. 의료인이 병원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는 모든 접촉은 잠재적인 감염 원인이다. 당장 핸드폰만 해도 변기 시트보다 열 배 이상 많은 균이 분포한다고 하는데, 데이터에 접근하기 위해 그런 "오염된" 물건을 만지는 것 자체가 리스크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체성을 잡기를, "병원 수련의의 모든 프로시져를 손을 접촉하지 않고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하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모델은 접촉감염을 통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시장조사를 하면서 꽤 놀랐던 점들이 여기에 있었는데, 접촉감염을 통한 병원 내 감염이 생각보다 꽤나 심각하다는 점이다. MRSA, VRE, CRE 등 다재내성균 감염이 주로 접촉감염으로 이루어지며, 병원 안에 입원해 있기만 해도 병원 내 감염이 될 확률은 꽤 크다. 이러한 병원 내 감염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감염관리 하위 25% 병원들에게서 보험 지급을 삭감(!) 한다고 하는데, 이걸 AR의 hands free 기능을 사용한다면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진행하였다.

 

첫 해커톤이다 보니 모든 게 순조롭지는 않았다. 550만원이라는 기기값으로 인해 BM에 확신이 들지 않다 보니 피벗을 여러 방향으로 시도해 보기도 했다. 그래서 논의가 엄청 길어져 팀원들이랑 다같이 밤을 거의 새웠다. 발표 직전까지 피피티 완성을 겨우 해서 걱정이 많았었는데, 실력 있는 팀원들이 다같이 도와줘서 나름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잘 마칠 수 있었다. BM 및 리서치 쪽을 담당했기에 기술이 어느 수준까지 구현되었는지는 나도 최종발표 때 처음 보았는데, 데브 팀원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완성도가 좋았다. 피피티랑 UI 구성을 깔끔하게 잘 해준 디자인 팀원도 고마웠고, 함께 머리를 맞대서 고민해준 메디컬팀이랑 리서치팀도 고마웠다.

 

해커톤이 일반 프로젝트에 비해 가지는 장점은 시간 압박 하에서 프로덕트를 완성해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스타트업 대표님들도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 가며 무지 바쁘게 지내시는 분들을 봤는데, 해커톤에서의 경험이 나중에 창업했을 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의 임기응변 능력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 해커톤은 내가 생소한 주제였던 AR로 나갔지만, 올해 기회가 된다면 Medical AI 해커톤에도 참여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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