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인후과 원장님과의 커피챗

2024. 1. 4. 13:17비즈니스/헬스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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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기회로 초등학교 때부터 다니던 이비인후과의 원장님과 커피 한 잔을 하였다. 우리 의과대학 87학번 선배이신 원장님은, 연구 쪽 길을 걸으시다가 개원을 하셨기에 진로 선택의 이유를 여쭤보고 싶었다. 또한 내 주변 가족이나 지인 분 중에 개원하신 분이 없어서, 환자가 아닌 후배 의사로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고 싶었다.

개원에 대해

나는 성장을 즐기는 사람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곳에 나아가는 과정에서의 성장을 즐긴다. 이런 차원에서, 개원에 대해 이제까지 약간의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개원을 하면 금전적 여유를 가지고 어느 정도의 보람을 느끼며 살겠지만, 성장하는 삶이 아니라 매일매일 반복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지겨움을 느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원장님께 여쭤본 결과, 적성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금전적으로 엄청 풍족하지는 않지만 내가 하고싶은 연구를 하면서 여유롭게 사는 것이 좋다면 대학 교수가 적성에 맞을 것이다. 또한 개원을 하게 된다면 (잘 되는 병원의 경우) 아주 바쁘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 원장님께서는 하루에 약 80~100명의 환자를 보시는데, 쉬지 않고 일하셔야 하기 때문에 지치기도 한다고 하셨다. 물론 개원을 하더라도 성장하면서 살 수도 있는데, 큰 병원을 경영하는 느낌으로 운영하는 동기들도 있다고 한다.

창업에 대해

원장님께서는 창업에 관해 꽤 관심을 갖고 계셨다. 사실 어떤 산업이든 마찬가지이지만, 헬스케어 산업의 가장 중요한 질문인, "Payer 가 누가 될 것인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다. 국내 의료 시장에서 B2B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 의사 혹은 병원이 돈을 내야 하는데, 이것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쉽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또한 B2C는 의료비를 더 지출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해야 한다. 주변에서 훌륭한 연구나 아이템을 창업으로 끌고 간 사례를 많이 보셨다고 하는데, 적절한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면 투자는 잘 받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고꾸라진다고 한다. 비대면 의료를 예시를 드셨는데, 미국 비대면 의료 시장도 엄청나게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폭락했다고 한다. "자기가 풀고 싶은 문제에만 집중하지 말고,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해라" 라는 <유난한 도전>에서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인 것 같다. 창업을 하는 것은 좋되, 튼튼한 커리어가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도 와 닿았다.
 

의료 정책에 대해

원장님께서는 미국에서 이비인후과 연구를 하시면서 주변의 clinician들과 만날 기회가 많으셨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환자가 병원을 찾아갈 때 "어디가 아파요" 보다 "어떤 보험이 적용되나요?" 를 많이 묻는다고 한다. 미국은 사보험 제도이기 때문에 병원마다 적용되는 보험이 극과 극으로 다르다. 당연히 환자가 적게 부담하는 "좋은 보험"이 적용되는 병원은 환자가 많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병원은 환자가 적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차이에 의해 한국과 미국 의사의 수입이 달라진다. 미국 의사가 많이 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환자 1명당 더 많은 돈을 받을 수는 있으나 병원 자체에 오는 환자가 적기 때문에 전체 수입은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80명의 환자를 보는 병원이 같은 조건으로 미국에 간다면, 같은 수입으로 20~30명 정도 환자를 보지 않을까 예상하셨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에 관해서도 질문드렸다. 건강보험 제도는 매년 국민들에게서 걷어서 나온 돈으로 의료 행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정이 고갈되는 개념이 아니라 가격이 인상되는 개념이라고 알려 주셨다. 또한 "의료수가"라는 것은 정부에서 결정되는 것이고, 이것이 소위 말하는 "인기 과"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과가 인기 과가 될지는 여기에 달려있다. 실제로, 지금은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가 1등 과이지만 자신이 대학교에 다닐 때는 그렇게 높지 않았으며 오히려 내과와 산부인과가 높았다고 하신다. 정책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어야 시스템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말씀이 와 닿았다.
 


창업을 꿈꾸는 의대생이 커리어를 택함에 있어 최선의 결정은, 평생을 두고 보아도 후회되지 않을 만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재미있다"라는 근시안적인 마인드로 창업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의 커리어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설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대화였다.
 
Ose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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