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위와 속도

2024. 1. 18. 15:14비즈니스/벤처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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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심사역 8분과 함께 두 개 스타트업의 IR을 참관하였다. 두 회사는 모두 우리 VC에서 한 차례 투자를 받은 상태였고,후속 투자 유치를 위해 6개월 정도가 지나고 다시 한번 피칭 덱에 섰다. 두 시간 가량의 IR이 끝나고, 두 스타트업에 대한 심사역들의 평가의 시간이 있었다. 심사역들의 반응은 엇갈렸는데, 첫 번째 회사는 2명을 뺀 나머지 모두가 후속투자에 반대했고, 두 번째 회사는 모두가 후속투자에 찬성하였다. 6개월 전에는 두 스타트업이 모두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초기투자를 했을 텐데, 6개월이 지난 지금 왜 평가가 엇갈렸을까?

 

많은 심사역들은 고민의 깊이에서 나오는 팀의 속도를 꼽았다. 첫 번째 회사는 초기투자 당시 좋은 아이템으로 현실적인 KPI를 설정하여 열심히 달리는 것처럼 보였었는데, 후속투자 IR을 보니 그때와 달라진 점이 많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심사역들조차 하고 있는 질문에 대한 고민을 대표가 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당 아이템에 대한 고민은, 비록 답을 찾지 못하였더라도, 그 어떤 심사역보다 대표가 많이 하고 있어야 사업이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VC가 대표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트레이닝은 스킬적인 부분이지, 아이템 그 자체에 대한 부분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고민이 부족해지면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두 번째 회사는, 초기투자 심사 때 회사가 어떤 고객에 먼저 접근하는 것이 좋을지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전략적인 고민을 통해 방향성을 하나로 결정하고, 그 부분만 끈질기게 파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떤 전략으로 앞으로 시장에 접근해서 어떻게 엑싯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이 머릿속에 있는 듯하였다. 이러한 전략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6개월 동안 몸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VC의 신뢰를 살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VC들은 변위가 큰 팀보다 속도가 큰 팀을 더 선호한다.

 

팀이 난관에 봉착했다고 해서 VC가 투자를 꺼리는 것이 아니다. 난관에 부족했을 때 얼마나 깊이 있게 고민을 하고 전략적인 사고로 늪을 벗어나는지가 훨씬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역량은 한 번의 IR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의 IR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팀의 변위이다. 즉, 팀이 현재 어느 정도 위치에 와 있는지이다. 팀을 오랫동안 지켜 봐야 할 수 있는 것이 팀의 속도인 것 같다. 말로만 "빨리 달릴 수 있다"라고 말하는 팀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한 번의 IR만 본 팀보다, 인큐베이팅 과정이나 마일스톤 과정을 함께 거쳐온 팀들을 선호하는 것 같기도 하다. 

 

VC는 결국 멀티플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 지금 얼만큼 했어" 를 의미하는 변위보다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를 의미하는 속도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속도는 자신의 아이템에 대한 전략적인 고민의 깊이에서 나온다.

 

Ose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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