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6. 19:18ㆍ독서
제목 : 이기적 유전자
저자 : 리처스 도킨스
완독일 : 250906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문장을 기반으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우리는 유전자를 운반하는 생존 기계이다. (We are survival machines — robot vehicles blindly programmed to preserve the selfish molecules known as genes.)
<이기적 유전자>는 통념과도 같았던 인간중심주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을 객체로 전락시켜 버리고, 유전자가 주체라는 시각을 제시하여 그토록 논란이 많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객체가 되는 순간, 자칫 허무주의에 빠져들 수 있고, 쾌락주의에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다. 나도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고민했었다. 우리의 모든 욕구는 우리 유전자의 복사본을 퍼뜨리기 위한 선택압에 의해 진화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킨스의 말처럼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전자의 특성을 이해하고 자각한 유일한 존재이다. 즉, 이기적인 복제자의 속성에 맞설 수 있기에,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유전자의 꼭두각시이지만, 동시에 그 줄을 볼 수 있으며 줄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꼭두각시다.) 즉 우리는 자율적으로, 본능에 반하는 삶의 목적을 스스로 창조하여 살아갈 수도 있고, 유전자의 복제와 무관한 새로운 복제 체계를 창조할 수도 있다. 이것이 도킨스가 말한 meme 일 것이며,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두 번째 파트에서 계속 적어보고자 한다.
일부 저자의 생각과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다. 유전자에 의한 선택압과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현상을 일부러 이론에 끼워맞추는 causal mismatch라고 느낀 부분도 있었고, 일부러 가설에 부합하는 사례들만 취사선택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는 숙주가 자신을 더 잘 복제해 줄 수 있는 행동을 하도록 진화한다"를, 바이러스의 증상인 재채기를 통해 설명하는 부분을 그렇게 느꼈다. 재채기가 진화한 원인을 해당 명제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많은 중간과정을 생략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매독균은 숙주의 성적 매력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화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근연도에 의한 사랑의 해석도 말이 안 된다고 느꼈다. 도킨스는 가족 간의 사랑(kin love)이 근연도에 따라 발생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더 많은 유전자를 공유할수록 사랑이 커진다고 주장했다. 이는 입양된 자식에 대한 사랑 등을 설명할 수 없다. 물론 "선택압" 과 "선택" 은 다른 개념이지만, 현상을 보고 유전자의 선택압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 크다고 생각했다.
2. 우리가 사후에 남길 수 있는 것은 유전자와 밈 두 가지이다. (When we die there are two things we can leave behind us: genes and memes.)
Meme이라는 단어는 이 책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사람의 지적 공간에서 복제될 수 있는 아이디어, 가치, 문화를 말한다. (도킨스는 책에서 인류의 대표적인 meme으로 종교를 뽑았다.) 이 정의에 따르면 과학, 예술, 윤리, 사랑, 공동체 모두 meme으로 볼 수 있다.
나는 gene을 남기는 것과 meme을 남기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일인지, 혹은 굳이 무언가를 남기지 않고 나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인지 고민해 보았다. 우선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쾌락에 가까운 행복만을 추구하는 삶은 단기적으로는 만족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행복의 강도는 약해지고 결국에는 죽음 앞에서 매우 허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meme을 남기는 삶’, 즉 나의 즐거움과 동시에 어떤 형태의 legacy를 만들어가는 삶이 가장 나에게 맞는 방향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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