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덴티티와 수익성 사이의 저울질

2023. 11. 28. 00:27비즈니스/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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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프로젝트 팀원과 함께 서울대학교 창업지원단에서 멘토링을 받고 왔다.

 

서울대학교 창업지원단(https://startup.snu.ac.kr/)에서는 예비 창업자 혹은 업력 3년 이내의 초기 창업팀을 서울대학교 재학 여부와 무관하게 멘토링해 준다. 멘토는 창업 관련 지도 경험이 풍부하신 교수님이셨으며, 약 1시간 가량 멘토링을 받았다.

 

멘토링은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멘토님께서 우리의 사업 계획서에 대해 자세하게 읽어보시고 우리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뜯어보신 후 멘토링을 해 주실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 사업계획서를 제대로 읽어보시기는커녕 며칠 밤을 새서 구체화한 비즈니스 모델에 관해서는 "지금 너희에게 중요한 건 이런 숫자놀이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멘토링이 끝나자마자 팀원들에게 내가 느꼈던 실망감, 그리고 왜 우리 노력을 몰라보시는지 털어 놨다.

 

그런데, 멘토링이 끝나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멘토님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으셨는지를 느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구체화하지 않은 채,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에만 신경을 몰두하고 있었다. 자본금도 없는 초기 스타트업이 돈을 번다고 얼마다 벌겠는가. 물론 기업이라는 것은 결국 수익을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굳히지 않은 채 벌어들이는 돈은 기업을 성장시킬 수 없다. 기업을 튼튼한 그릇, 수익을 물이라고 한다면 그릇이 완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들이붓는 물은 줄줄 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업 가치를 몇십 배, 몇백 배 가까이 키운 스타트업의 공통점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에 대한 뚜렷한 비전과 아이덴티티가 있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핀테크의 선구자 토스 팀은 이용자가 100만이 될 때까지 이렇다 할 만한 수익 모델이 없었으며, 현재 IT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OpenAI도 유료 구독을 제외하고서는 수익 모델이 없어 2022년 한 해 동안 약 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들은 분명한 비전과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었다. 토스는 온라인 송금 서비스를 통해 압도적으로 편리한 금융거래를, OpenAI는 인간에 가까운 NLP 모델 및 인류에게 유익한 인공지능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수익 구조가 좋았던 회사들도 있었다. GoPro의 창립자 닉 우드먼(Nick Woodman)은 손목에 차는 소형 액션카메라에 대한 PoC로 처음부터 수익을 내었다. 하지만 이들도 "다이나믹한 스포츠를 하면서 촬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부착형 카메라"라는 뚜렷한 아이덴티티가 있었다. 즉, 비전/아이덴티티와 수익성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때, 전자를 포기한 기업은 발전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를 포기하려면 후자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멘토님께서 사업계획서를 읽어보시지 않았던 것은 우리의 아이덴티티가 부족하다고 느끼셨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우리를 도와주고자 오신 멘토조차 우리의 사업에 관심이 없을 정도라면,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고객은 당연하게도 우리의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사업은 노력하는 만큼 결실이 주어지는 영역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고객을 설득하는 것을 실패한다면, 아무리 밤을 새워 가며 노력하더라도 모두 헛수고가 된다.

 

서울대학교 창업지원단 멘토링을 통해 얻었던 값진 메시지는,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수익을 버리더라도 아이덴티티를 취하라 이다.

 

Ose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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