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프로젝트를 정리하다

2024. 1. 24. 02:39비즈니스/창업

728x90


작년 하반기 때 팀빌딩 후 약 4개월 간 함께했던 프로젝트 팀이 있다. 아이템은 F&B계열 예약 및 소셜 어플리케이션. 이 아이템에 대해 깊은 열정을 가지고 있던 4명의 동문이 모여 시작한 일이었다. 막연히 "창업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했던 내게 첫 번째 실전 경험이었고, 창업에 대해 많은 인사이트와 시행착오를 주었던 경험이었다.



 
오늘, 2주간의 고민 끝에 해당 프로젝트를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팀원들에게 의사를 전달한 상태이고, 아무런 갈등 없이 잘 이야기하고 서로의 미래를 응원하며 매듭지었다.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진 나를 이 정도로 성장시켰던 프로젝트이니만큼 팀원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내 의견을 존중해 준 것도 감사하다.

프로젝트를 정리하기로 결정을 내린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집중의 문제이다.

창업인재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는 집중이다. 설령 좋은 아이템을 잡았다 하더라도, 집중하지 못하는 창업가는 그 아이템을 더 열심히 하는 팀에게 빼앗기고 말 것이다.
본업이 있는 경우, 프로젝트에 집중하기는 더 어렵다. 팀에는 풀타임 근무하는 대학원생이 두 명 있었으며 나도 의학 공부 때문에 프로젝트에 온전히 정신을 쏟기 어려웠다. 이러한 이유로 팀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본업과 사이드 프로젝트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 자칫 내게 훨씬 중요한 본업을 놓치게 되면 안 되지 않을까. 우리에게 본업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팀원들도 모두 공감하는 듯하였다.

Q. 진지하게 하는 창업이 아닌 사이드 프로젝트 수준의 일인데, 집중을 그 정도로 안 하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닌가?
A. 맞는 말이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투자 유치를 목표로 하는 "진짜 팀들"보다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배워갈 수 있는 실전적 요소들이 있는데, 그러한 것들은 4개월 간 충분히 배웠다고 생각했고, 사이드 프로젝트로서 내가 더 이상 배울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드 프로젝트 이상의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집중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나도 그렇고 팀원들도 그렇고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둘째, 팀원 간의 포지셔닝 문제이다.

우리 네 명은 아이템에 대한 깊은 열정을 보인다는 공통점만 있었을 뿐, 역량에 따른 역할분담이 되고 있지 않았다. 이런 일이 생긴 이유는 팀빌딩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팀빌딩 때, 불특정 다수에게 공고를 올리고, 신청한 사람은 검증 없이 조인하는 방식으로 팀원을 모집했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장점이 어떤 건지 확인이 불가했고, 기여도가 거의 0에 가까운 팀원이 생겼다. 아이템에 대한 열정은 좋은 창업팀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너가 우리 팀을 위해 무슨 일을 잘 해낼 수 있는데?" 라는 질문에 대해 모든 팀원이 답을 할 수 있어야, 좋은 초기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팀빌딩이 이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다음 창업 때는 내가 생각하는 최대한 이상적인 방법으로 팀빌딩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다. 이 아이템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역량이 필요할지 우선 고민해보고, 그런 사람을 어디서 만날지와 어떻게 설득할지를 고민해야겠다.


셋째, 비전이 부족했다.

팀에서 나가기 전의 한 달 동안, 우리 팀에서 부족한 인력인 개발자를 찾기 위해 가능한 모든 곳을 쑤시고 다셨다. 개발자 플랫폼은 물론이고, 개발 크루, 오픈채팅방, 컴퓨터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지인, 심지어 공과대학 혹은 영재학교 동문회 쪽도 열심히 찾아보았다. 실력있는 개발자는 많이 있었으나 팀에 조인하고 싶다고 한 이는 없었다.
우리처럼 개발자들에게 줄 현금이 없는 초기 팀들은, 팀 내부에 개발자를 두어야 한다. 외부에서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설득의 내용은 아이템의 커다란 업사이드일 수도 있고, 아이템이 가져오는 사회적 임팩트 혹은 비전일 수도 있다. 우리의 아이템은 그 두 가지가 모두 없었다. 나 스스로가 설득이 안 되는데,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 3자를 설득하는 건 무리였다.
시장조사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TAM SAM SOM 같은 장표가 현실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장조사는 추정치이며 시장 상황은 계속 바뀐다. 의미없어 보이는 시장조사를 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설득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팀 내부에서도 동기부여의 효과가 있으며, 우리 사업에 관해 문외한인 외부인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 그들을 설득하는 효과가 있다.
우리 팀은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시장조사가 부족했고, 그렇다고 가슴이 뛰는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속도가 더뎌졌고, 외부 인력을 충원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세 가지는 팀빌딩 당시에는 전혀 고민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창업에 관해 열정만 갖고 순진하게 접근했던 것 같다. 그 동안 실전에 부딪혀 가며 시행착오해 보고, VC일을 하면서 참 많이 성장했다. 적어도 4개월 전의 창업 한번 해보겠다는 어린아이 마인드는 벗어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VC일을 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좋은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다고 해서 창업으로 성공할 수 없다. 전략적인 사고와 집중력이 창업으로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오늘을 끝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부족한 팀원을 이만큼이나 성장하게 해준 팀원들에게 다시 한번 너무나도 감사하다. 각자의 미래를 응원하며, 언젠가 전략적인 사고와 집중력을 갖춘 창업팀으로 다시 돌아오겠다.

Oselt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