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마키아벨리,「군주론」을 읽고

2024. 3. 1. 23:21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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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현재 군주국은 세상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일본과 같은 입헌군주제 국가는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의 권한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군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세습 가능한 전제군주를 가진 북한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군주론」이 현대사회에서 아직도 의미가 있는 이유는, 예전에 국가가 하던 역할들을 현대에는 기업이 다수 물려받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3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이다. 영토는 현재에도 국가가 대부분 수호한다. 하지만 국민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수당을 지급하는 것도 기업이고, 최근에는 국가보다 자신이 속한 기업에 더 큰 소속감을 느끼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현대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은 치안과 소방 등의 공공재이지만, 기업은 생존에 필요한 많은 것을 국민에게 제공한다. 주권 또한 마찬가지이다. 현대국가의 권력은 군사력보다 경제력에서 나온다. 현대 자본주의 체계에서는 과거 국가가 하던 일들을 상당수 기업이 하고 있는 것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상당한 문제작이었다. 군주는 상황에 따라서도 비도덕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주장, 그리고 이 도서가 이러한 행위를 합리화할 수 있다는 점은 여러 논쟁거리를 낳았다. 그러나 이 도서를 통해 마키아벨리는 비도덕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안정된 국가를 만들어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더욱 방점을 두었다고 생각하여, 비판적인 시각으로 배울 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또한 이 도서를 현대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관점에서 재해석해보고자 한다.

 

정복자가 취해야 하는 태도

 
마키아벨리는 모든 나라는 공화국 혹은 군주국이며, 군주국은 신생 군주국세습 군주국으로 나뉜다고 보았다. 신생 군주국은 무력, 행운, 혹은 역량으로 얻을 수 있다.


신생 군주국은 지배받는 국민이 "군주"라는 개념에 익숙한지에 따라 다시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군주에 익숙한 나라를 정복하여 신생 군주국으로 만들 경우, 나라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자유가 원래 없던 국민은 그다지 자유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군주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유지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혼합 군주국(완전히 새롭게 생긴 것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처럼 덧붙여진 나라)는 국민이 군주에게 저항할 수 있다. 그러면 군주는 국민을 진압할 수밖에 없으며 국민과 적이 될 것이다. 또한 아무리 강한 군사력이라도, 국민의 호의를 사지 않으면 나라를 유지하기 어렵다.
 
정복한 나라의 언어, 관습, 제도가 유사한지 여부도 국민의 저항에 많은 영향을 준다. 문화가 비슷한 나라를 정복하면 군주가 바뀌어도 크게 저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피정복민의 저항을 피하기 위해서는 군주가 많이 노력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이에 대해 아래 두 가지 해결책을 내놓았다.

  1. 군주가 직접 정복한 땅에 가서 거주하자: 저항하려는 자는 저항하지 못하게 되고, 저항하지 않으려는 자는 군주를 더욱 좋아하게 된다
  2. 군대를 보내기보다는 식민을 보내자. 피해를 보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군주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약한 자들을 대접하고 강한 자들을 억누르자.

또한, 신생 군주국은 군주의 역량으로 얻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역량으로 얻을 수도 있다. 이러한 군주들은 행운에 대한 의존도가 다르다고 한다. 군주 자신의 역량으로 정복을 한 군주에게 행운이란 그냥 기회일 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닐 수도 있다. 반면 다른 사람의 역량으로 발생한 신생 군주국은 행운이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완전히 동일한 은유는 아닐 수 있겠지만, 국가를 기업에 비유한다면 군주는 최고경영자 및 경영진, 그리고 국민은 사원일 것이다. 국민은 그대로지만 군주가 바뀌는 경우, 즉 정복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해임으로 인한 경영진의 변동, 혹은 인수합병 등이 있을 것이다.
 
애플은 2011년 스티브 잡스 사후 팀 쿡(Tim Cook)을 새로운 최고경영자로 맞이하였다. 팀 쿡은 애플의 기업 문화와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최고경영자가 된 이후에도 애플 제품의 혁신성, 공급망 관리를 통한 생산 관리에 집중하여 기업의 수익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반면, 제너럴일렉트릭(GE)은 2017년 제프리 이멜트(Jeff Immelt)의 후계자로 존 플래너리(John Flannery)를 최고경영자로 임명했다. GE는 전통적으로 전력, 에너지, 항공,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산업에서 다각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를 잘 통합하여 이용하지 못하였으며, 기업 문화 혁신이 130년 가까이 쌓여 온 회사의 전통과 방향성이 일치하지 않았다. 이러한 결함으로 인해 결국 존 플래너리는 2018년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사퇴하였다.
 
전자의 경우는 정복한 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하여 정복민의 저항이 적었던 경우에 해당할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정복한 나라의 문화를 바꾸려고 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좋은 부하는 누구인가?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관리 선출은 무척 중요한 일이라고 여겼고, 군주의 신중함에 따라 곁에 두는 관리의 질이 달라진다고 여겼다. 군주가 이러한 부분에서 지혜로운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주변인들이 능력있고 충성스럽다면, 능력 있는 자들을 알아보고 자신에게 충성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삼국지의 유비는 무예나 전술이 다른 등장인물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촉나라의 수장이 되어 삼국의 힘겨루기에 참여할 수 있었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관우, 장비와 같은 명장을 자신을 의형제라 여기며 굳게 따르도록 하였으며, 제갈공명이 인재임을 알아보고 삼고초려한 것은 그의 사람 보는 눈이 훌륭하고 그들을 자신을 따르도록 하는 리더십 때문이 아닌가 한다.
 
마키아벨리는 또한 나쁜 부하를 걸러내는 법을 저술하였다. 관리가 국가보다 자신의 사익을 추구한다면 그는 절대 훌륭한 관리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관리는 자신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오로지 국가와 군주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군주는 관리를 생각하고 존중하며 그를 부자로 만들어주고 명예와 임무를 공유해야 한다. 군주 없이는 관리가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아첨하는 관리를 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군주에게 진실을 말해도 불쾌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관리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롭게 진실을 말하고 충고하더라도 군주는 이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 주어야 아첨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리더의 악행은 정당화되는가?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악행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라를 빼앗길 만한, 혹은 그러지 않을 만한 악행이라 하더라도 가급적 피하자. 단, 피하기 어렵다면 크게 신경쓰지 않고 그냥 내버려둘 수 있다.

 
이러한 구절이 이 책이 문제작이 되었던 이유 중 하나이다. 군주의 악행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인데, 과연 현대 사회에서도 리더의 악행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마키아벨리는 어떤 일은 미덕처럼 보이지만 자신을 파멸시킬 수도 있고, 어떤 일은 악덕처럼 보이지만 안전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하였다. 안타깝지만 마키아벨리의 주장처럼 현대 사회에서도 "도덕적으로 옳은 일"과 "기업을 번영시키는 일"은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아직 처벌받지 않은 악덕 기업인들은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나는 기업을 번영시킨 부도덕한 리더를 평가할 때, 경영적인 평가와 도덕적인 평가를 나누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영적으로는 당연히 우수한 사람이겠지만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성공한 경영자이지만 도덕적으로는 비난받는 사람, 그리고 실패한 경영자이지만 도덕적인 사람 중 무엇을 택하겠는가? 대다수의 현대인이라면 전자를 고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도덕적 기업이 많이 나오기 위해서는 경영과 도덕의 상관관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도덕과 경영의 상관관계를 높이기 위해, ESG와 같은 경영철학이 등장하고 있다. 도덕적인 기업이라면 더 많이 투자하고 더 많이 소비해 주겠다는 움직임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충분하지 않으며 결국 기업의 도덕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 자신의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도덕적 기업이 나오기 위해서는 리더와 경영진이 실제로 그 가치에 공감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기업이 돈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보다 비전을 추구하되 돈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자세가 전략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책을 파는 회사라고 한다면, 그 회사의 1순위 가치는 돈을 벌겠다가 아니라 좋은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읽게 해주겠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고객도 그 회사가 제공하는 재화나 서비스가 진심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요컨대, 경영실적과 도덕의 괴리를 피하기 위한 시도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도덕적 기업이 나오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가치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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