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군에 입대했는가

2025. 9. 22. 22:47생각, 회고

728x90

2025년 7월 21일, 나는 군에 입대하였다. 우리 동문들이 군복무 옵션으로 많이 선택하는 의무병이나 군의관이 아닌, 육군 징집병으로 말이다. 이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나의 개인적 배경과 시대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개인적 배경.
 
나는 specialist보다는 generalist를 꿈꾼다. 산업혁명 당시 증기기관을 기반으로 한 기계화 혁명으로 인해 육체노동의 값이 급격히 떨어졌는데, 지금 시대에는 AI의 발전으로 지식노동의 값이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빠른 시간 안에 지적 깊이(intellectual depth)보다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고 적용하며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intellectual versatility)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현 시대의 의과대학 교육은 지적 깊이를 늘려 specialist를 양성하는 데에만 중점이 가 있다.
 
그렇다면 generalist가 되는 것과 군대는 무슨 상관인가?
 
첫째, 내게는 지식보다 인내력과 신념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육군 현역 복무로 나에게 부족한 인내력을 기르고 싶었다. 군 복무가 시간낭비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은데, 솔직히 이해되는 말이긴 하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은 누군가가 학문적으로 매우 성숙할 수도,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도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 개인을 강제로 속박한다는 군 복무의 속성은 단점투성이같아 보이지만, 숨은 장점도 있다고 생각했다. 시, 공간적 제약이 주어져 있기에 인내력을 기르기 좋고 정신적으로 성숙하기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 군대에 2개월 남짓 있었지만, 이제까지 배운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데, 여기서는 잘 풀리는 일에 비해 그렇지 않은 일이 훨씬 많다 보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를 배우기에는 군대는 꽤 괜찮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고생다운 고생을 해 보고 싶었다. (솔직히 한국인 남성이라면 "웬만해서는" 다 하는 군 복무를 가지고 고생다운 고생이라고 표현하기엔 진짜로 고생해 보신 분들께 죄송하기는 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좋은 부모님 밑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질 좋은 교육을 받고, 우리나라에서 탑이라고 불릴 만한 학교에 들어갔다. 어찌 보면 엘리트의 전형이라고 볼 수도 있는 삶으로, 편안히 자기 벌이 하면서 모자람 없이 행복하게 살 수는 있겠지만, 사회의 격동이 있을 때의 회복탄력성은 누구보다 부족해진다고 생각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당돌함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실패를 견딜 힘도 없이 어떻게 큰 도전을 하겠는가. 육군 현역으로서의 군복부는 도전적인 삶을 위한 "최소한의" 회복탄력성, 소위 말하는 "깡"을 내게 길러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달 지내 본 결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인간관계가 마음처럼 풀리지 않을 때도 있었고, 공사장에 투입되어 처음 겪어보는 힘든 육체노동을 해 보기도 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잘 버텨 온 것을 보면 앞으로 남은 군생활도 큰 무리는 없지 않을까 생각하며, 군 복무를 마치면 입대 전보다 훨씬 과감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멘탈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generalist는 리더, 도전가, 변혁가이다.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우겨넣는 시간이 아닌, 인내력과 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육군 현역도 어찌보면 꽤 괜찮은 선택지라는 판단이 섰다.
 
 
시대적 배경.
 
군 입대를 결정한 것은 2025년 1월, 군 입대가 확정된 것은 같은 해 4월경이었다. 당시 지리한 의정 갈등의 탈출구로 학교 측에서는 휴학중인 학생들의 복귀 데드라인을 정해 두고, 학교 측도 학생들의 복귀가 급했는지, 기한까지 복귀하지 않은 학생은 유급/제적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사건이 있었다.

대다수의 동기는 복귀를 선택했다. 나도 동기들과 함께 복귀했더라면 정신없이 본과 2학년 수업을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본3, 본4를 보내고, 의사면허 취득 전후로 의무병이나 군의관으로 군복무한 후, 의사의 전형적인 커리어를 따라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군휴학을 선택했다. 군 문제를 해결하면 전역 후 본2-2학기부터 조금 더 도전적이고 과감한 삶을 살아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군대를 남겨둔 채로 도전을 한다면, 언젠가 분명히 흐름이 끊길 때가 올 것이고, 그것을 나는 바라지 않았다. 솔직한 당시의 심정으로는 아끼는 동기들과 떨어지기 싫은 마음, 혼자만 다른 길을 간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왕 결심한 거, 군복무부터 빠르게 해치워 버리자라는 마음을 그때 먹었고, 학교에서 발표한 데드라인에 복학원서 대신 입영사실확인서와 군휴학원서를 제출했다. 그렇게 입영통지서가 나오기도 전 휴학원서에 도장이 찍히게 됐고, 군 복무가 확정되었다.



아래는 25년 8월 28일, 훈련소를 수료하고 자대 배치를 기다리며 17사단 보충중대에서 쓴 일기다.

25년 7월 21일에 입대한 지 39일 차, 어제 수료식과 면회외출을 하고 17사단 본부 보충중대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방금 전 난수를 돌려 자대를 배치받았고, 내일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이동할 텐데, 앞으로 어떤 군생활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오늘의 글에서는 그간 훈련소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계획해보려고 한다.

훈련소에서 느꼈던 점들 중 하나는, 다양한 군상의 사람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나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세계관은 많은 명상과 생각, 그리고 독서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군 입대 이후, 군생활 동안의 3대 목표를 운동, 독서, 명상으로 잡고자 한다. 독서는 군 생활 전체 동안 70권을 읽는 것이 목표이고, 책에서 소개된 다른 책을 꼬리물기로 읽는 독서를 하고 싶다. 운동은 매주 40km 이상 달리기를 통해(<- 이등병 때는 일단 눈치를 조금 보겠다) 체중을 감량하고 코어 운동을 할 것이다. 명상은 개인정비/취침 전 5분 수행 후, 이 일기장에 "정돈된 생각"만 작성할 것이다. 정돈되지 않은 생각은 미니노트에 적도록 하자. 이 일기장은 총 65페이지, 한 쪽을 반으로 쪼개 쓰면 260일분이 나온다. 휴가일 등을 제외하면 군생활의 절반 지점쯤까지 이 일기장과 함께하는 것이다. 명상과 노트정리를 통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나의 신념을 확보하는 것이 제1목표, 욕심을 버리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제2목표이다. 또한, 머릿속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비우고 긍정적인 생각만 하는 것이 제3목표이다.

겨우 적응했던 훈련소를 떠나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니 걱정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모험을 떠나는 것 같아 좋다. 아무리 나빠도 훈련소보다 더 하겠어? 라는 마인드*이다. 그리고 핸드폰도 매일 쓸 수 있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 수 있고, 여러모로 훈련소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다. 그럼에도 핸드폰에 빠져서 정작 중요한 것들을 못 하고 시간낭비하는 것은 막고 싶다.

마지막으로 훈련소에서 느꼈던 것은, 많이 웃고 많이 감사하자는 것이다. 모든 상황이 100% 만족스러울 수는 없으니 행복하기 위해선 감사해야 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 진지공사는 훈련소 전체를 합친 것보다 힘들었다.


70권 독서의 경우 원래는 미니노트에 배운점들을 정리했었는데, 내용이 흩어지는 것이 우려되어 앞으로는 블로그의 독서 세션에 정리해 보려고 한다.

반응형

'생각, 회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秋風古栢鷹生子, 雪月空山虎養精  (0) 2025.11.30
집중 타임  (1) 2024.02.14
2023을 돌아보며 ..  (2) 2023.12.31
나를 정의하기  (3) 2023.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