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헬스케어

한국 의료기기 시장에 관한 인사이트 1편: 의료정보시스템 (feat. KIMES 2024)

Oselt 2024. 3. 17.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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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기기 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

KIMES 2024를 다녀왔다.  코엑스 전시장 A~E 홀 전체를 대관하여 총 850개의 업체가 참여했다. 오전 10시 30분 정도에 도착해서 오후 6시까지 약 7시간 가량을 쉴새없이 돌아다녔는데, 한 30%도 제대로 못 본 것 같다. 느꼈던 점은, 한국 의료 시장은 엄청난 각축장이자 레드오션이라는 것이다. 지불 용의가 한정된 병원에게 제품을 팔기 위해 한정된 파이 안에서 땅따먹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 강했다.
 
2022년 한 해 기준 한국 의료시장 전체 규모는 약 11.9조 원이었다. 대략 12조 원이라고 치자. 2023년 자료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연평균 성장률을 적용해 보면 13~14조원 정도 될 것 같다. 이게 어느 정도 규모냐, 2022년 사교육 시장 규모가 26조 원이었다. 즉, 한국이 의료기기에 쓰는 돈이 학원에 쓰는 돈의 절반도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입장벽이 낮은가? 까다로운 임상시험, R&D, 회수가 가능할지 여부도 모르는 어마어마한 투자금이 들어가는 산업이 의료기기이다.
 
당신이 연필깎이를 산다고 하자. 어떤 연필깎이 회사가 자신의 제품을 홍보하기를, 다이아몬드 블레이드와 나노 기술로 세상에서 가장 뾰족하게 흑연을 깎아낼 수 있으며 안정적인 화합물 구조를 연구해서 연필심이 절대 부러지지 않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 10만원에 판다고 하면 사겠는가? 난 3만원에 판다고 해도 안 살 것 같다. 아무리 훌륭한 R&D를 거쳐 나온 세계 최고의 기술이라도, 그걸 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시장성은 제로인 것이다. 오늘 구경한 많은 수의 의료기기가 그랬다. 의료기기나 헬스케어 산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술력보다 "누가 돈을 낼 것인가?" 인데, 돈을 낼 사람이 정해지지 않은 채 원하는 사람이 없는 기술력만 기르고 있는 업체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 의료기기 시장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국민건강보험, 실손보험 등과 같이 한정된 파이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할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예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는 건 어떤가 한다. 파이의 크기 자체를 키우는 것이다. 뭉칫돈이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라 한국의 의료기기 기술을 필요로 하는 다른 나라일 수 있다.
 
본 포스팅을 시작으로 하여, KIMES에서 배우고 느낀 인사이트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대략 구성은 아래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데, 약간의 가감이 들어갈 수도 있다.

  1. 한국 의료정보시스템 시장
  2. 미용/재활시장
  3. 병원장비

 

한국 의료정보시스템 시장

의료정보시스템이란?

 
의료정보시스템은 병원 내 의료 및 행정 업무를 관리하기 위한 기술이다. 쉽게 말해 데이터를 기록하고 확인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등을 말한다. 오늘 KIMES에서 중점적으로 보았던 의료정보시스템은 아래 두 가지이다.

  • EMR: Electronic Medical Record, 병원 차트를 말한다.
  • PACS: Picture Archiving Communication System, X-Ray, CT 등 영상이나 사진과 같은 이미지 데이터를 띄우는 소프트웨어

EMR, PACS는 대단한 IT기술이 들어가는 제품이 아니다. 이들은 간단한 DB 관리 정도만 가능하다면 구현하기는 비교적 어렵지 않다. 디자인적으로 훌륭한 UI가 필요하지도 않고, EMR 프로그램의 UI는 2024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구린 것들이 많다. EMR 양식과, 들어가는 정보도 업체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나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요소라면, 얼마나 병원의 워크플로우를 프로그램에 잘 녹여낼 수 있는지인 것 같은데, 의사 자문을 구한다면 이러한 요소도 사실 어느 정도 수준을 넘기면 거의 비슷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 EMR 시장은 순전히 영업 싸움이다. 먼저 계약한 업체 걸 계속 쓰는 것이다. 압도적으로 퀄리티가 좋은 EMR이 등장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이미 기존 EMR에 익숙해진 의사들 입장에서는 바꿀 유인이 없는 것이다. (물론, 업체들은 다른 업체 EMR에서 손실을 최소화해서 자신들의 EMR로 바꿔 준다고  홍보하긴 하지만, 굳이...?) 그럼 EMR 업체들은 어떤 영업 전략을 가지고 있을까?
 

출처: Adobe Stock

 

묶어팔기 전략

 
1차 병원의 경우, 개원할 때 의료기기와 장비를 한꺼번에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본 업체들은 EMR을 메인으로 하기보다, 다른 의료기기 (내시경, CT 등) 를 판매하면서 EMR 서비스를 같이 붙여서 파는 곳들이 있었다. 어차피 개원하자마자 의료기기랑 EMR 같이 쓸 거, 그냥 묶어 팔자 전략이다. 예시는 아래와 같다.

1.조선기기
이 회사는 1978년 서울대병원 시공 당시 입찰 기업이었다. PACS 소프트웨어도 다루지만, 메인은 C-ARM이다. 특히 다른 업체보다 영상 퀄리티 면에서 많은 어드밴티지를 가진 C-ARM을 팔면서 PACS를 연동하여 판매한다.

2. 포인트닉스
이 회사는 앉아서 찍는 CT 기계 (앉아서 얼굴 스캔하는 데 1바퀴 당 10~19초가 걸란다)를 판매하면서 PACS를 같이 판다.

3. 미라벨소프트
미라벨소프트는 PACS 시스템에 환자 추적검사 시스템을 얹었다. "케어포미" 라는 어플에 환자가 실시간으로 혈압, 체온 등을 기록하여 올리면 의사가 보는 PACS 화면에 올라온다. 그리고 의사가 환자에게 태블릿으로 설명한 내용이 환자 어플에 저장된다. 케어포미 어플은 아무런 비용 없이 무료 서비스로 제공되는데, 그 이유는 메인으로 수익을 내는 부분이 내시경 기기이기 때문이다. 즉, 내시경이 필요한 진료과에서 기기를 구매할 경우 미라벨 PACS와 케어포미를 함께 이용할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보안 문제

 
EMR은 중요한 것이 보안 문제이다. 환자 데이터가 유출되어 발생하는 의료분쟁으로 인한 피해는 보안 비용을 훨씬 상회한다. 이러한 이유로 EMR은 아래와 같이 두 가지 형태로 운영된다.

  1. 로컬 EMR: 로컬 EMR은 병원 내부망으로 병원 내 컴퓨터에서만 소통 가능하도록 만든 EMR이다. 하지만 외부망과 연결된 컴퓨터가 단 1대라도 있을 경우 보안 취약점이 되므로 보안 프로그램을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2. 클라우드 EMR: 클라우드 EMR은 회사에서 관리하는 DB에 데이터가 저장되고, 병원은 이에 온라인으로 접속하면 된다. 이러면 회사의 중앙 DB에만 강력한 보안을 주면 되기 때문에 병원 측에서는 보안의 필요성이 낮아진다.

최근에는 클라우드 EMR의 사용량이 꽤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비트컴퓨터와 같은 업체는 이러한 수요에 따라 로컬과 클라우드를 모두 서비스한다. 

나아갈 방향성

 
한국의 EMR 시장은 여러 회사가 춘추전국시대처럼 싸우고 있으며, 아래 5개 회사가 2021년 기준 나마 가장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다. 이 중 유비케어라는 회사는 의원급 병원의 45% 정도를 점유할 정도로 메이저한 플레이어이다.  EMR 시스템인 "의사랑"을 필두로 한 유비케어는 왜 저렇게 점유율이 높을까?

 
유비케어는 한국 EMR 시장의 초창기 멤버 중 하나이다. 당시 "메디슨" 이라는 상호였던 유비케어는 의원급 병원에 개인 PC가 들어오기 시작했던 시기와 거의 비슷하게 국내 최초의 EMR 제품을 출시(1993)하여 시장을 선점해버렸다. 또한 이때 "의사랑"을 공동개발했던 회사가 점유율 2등인 비트컴퓨터이다.
 
현재의 소프트웨어 기술로 이미 병원에서 필요한 기능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 따라서, EMR 시장은 이미 선점이 끝나버린 시장이며 새로운 EMR 업체가 신규 개원 의원을 노린다고 해도 그 파이는 작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EMR 업체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최근 스타트업들은 위에서 보았던 전통적인 강자들과 다른 전략을 취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먼저, 음성인식 기술과 NLP를 바탕으로 한 VoiceEMR이 있다. 퍼즐에이아이 등의 업체는 의무기록을 타이핑으로 입력하지 않고 인식된 음성이 자동으로 기록되도록 만든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환자의 눈을 보고 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환자 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현재 일반 EMR처럼 병원의 워크플로우를 그렇게 잘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인 것 같다.
 
둘째로, 클라우드 EMR이다. 세나클소프트와 같은 회사는 클라우드 위주로 EMR을 공급하는 회사이다. 클라우드 EMR의 수익모델은 구독료 혹은 수수료 모델에 더하여, 클라우드에 누적된 데이터 자체로 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 생긴다. 업체가 여러 병원의 데이터를 중앙 DB에서 관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데이터로 가치를 창출할 때 보안은 철저히 유지된다는 점이 전제된다.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EMR 시장의 총 규모는 약 40조 원이다. 물론 미국에도 Epic이나 Cerner 같은 빅 플레이어들이 많지만, 우리나라의 기술력으로 접근할 수 있는 파이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EMR이 점점 로컬에서 클라우드 산업으로 넘어온다면, 클라우드 내 정보를 유출 없이 수익화할 수 있는 보안 기술이 각광받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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