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헬스케어

모더나의 가르침

Oselt 2024. 3. 9.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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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우리나라에서 "돼지독감" 이라고 불리던 신종플루(influenza A, H1N1)를 기억하는가? 필자는 당시 막 초등학교를 입학했을 때였는데, 같은 반 친구들 중 그 독감에 걸렸다는 친구가 있으면 부모님들께서 타미플루부터 찾았었다. 전염병 초기에는 그 타미플루가 제대로 비축되지도 않아, 여기저기 구하러 다녀야 했었다.
 
타미플루 같이 전염병의 게임체인저가 되는 약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타미플루는 1999년 FDA 승인된 항바이러스제로,  로슈(Roche)라는 대형 제약회사에서 임상 2상, 3상을 리딩하여 개발된 약(1)이다. (참고로, 필자의 필명인 Oselt는 타미플루의 성분명인 oseltamivir에서 따 왔다.) 보통 이정도 규모의 임상 2상을 진행할 때 수백만~수천만 달러 규모의 비용이 들고, 임상 3상을 진행할 때 수억 달러 규모의 비용이 들어간다. 또한 시간도 십수 년 이상 걸린다.이러한 비용은 웬만한 기업은 부담하기 어려우며, 큰 몸집을 가지고 있는 대형 제약사들과 정부나 보험회사, 투자자들이  자금을 합쳐 만든다.
 

(1) Bardsley-Elliot, A., Noble, S. Oseltamivir. Drugs 58, 851–860 (1999).
 

한국 내 제약사들은 이러한 대규모 투자를 감당하기 어렵다. 자본 조달 자체의 어려움, 각종 규제, 단기적 성과에의 집중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미 제약시장을 대형 제약사들이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대형 제약사들은 처음부터 그정도 규모일 리는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 정도로 몸집을 키웠을까?

 

위는 2023년 10월 기준 전 세계에서 시가총액 $200B 이상의 대형 제약사들만 모아놓은 표이다. 현재 GLP-1을 타겟하는 비만치료제 시장이 핫한 상황에서 2위인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의 위고비(Wegovy)와 1위인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마운자로(Mounjaro)/젭바운드(Zepbound)가 경쟁중이다. 대형 제약사들의 대표적인 제품은 아래와 같다.

제약사대표 제품
일라이 릴리(Eli Lilly)프로작 (항우울제)
시알리스(발기부전 치료제)
마운자로(당뇨병 치료제)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삭센다(다이어트 약)
위고비(다이어트 약)
 존슨앤존슨(Johnson&Johnson)타이레놀(해열제)
리스테린(구강 청결제)
니조랄(비듬약)
콘서타(ADHD치료제)
머크(Merck / MSD)키트루다(항암제)
가다실(HPV 백신)
애브비(Abbvie)휴미라(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로슈(Roche)타미플루(항바이러스제)
허셉틴(항암제, trastuzumab)
아바스틴(항암제, bevacizumab)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타그리소(항암제)
임핀지(항암제)
포시가(당뇨병 치료제)
Vaxzevria(코로나19 백신)
노바티스(Novartis)글리벡(항암제)
졸레어(천식 치료제)
졸겐스마(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미국에서 가장 비싼 약)

위 대형 제약사들은 유명한 제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만큼,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각 회사의 창립연도를 알아보자.

  • 일라이릴리: 1876년
  • 노보노디스크: 1923년
  • 존슨앤존슨: 1886년
  • 머크: 1668년(..)
  • 애브비: 1888년*
  • 로슈: 1896년
  • 아스트라제네카: 1913년**
  • 노바티스: 18세기 중반***

*애브비는 1888년 설립된 애벗 래버러토리스(Abbott Laboratories)에서 2013년 분리되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1913년 설립된 Astra AB와 Zeneca Group PLC가 1999년 합병하여 생겨났다.
***노바티스는 18~19세기에 걸쳐 등장한 화학 약품 회사인 Ciba-Geigy와 1886년 설립된 Sandoz가 1996년 합병하여 생겨났다.


이 회사들이 모두 1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치료제"의 개념의 탄생과 함께 성장해 온 회사들이기 때문이다. 고대 시대에 허브나 광물의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해 치료를 수행하던 개념에서, 현대적 의미의 치료제로 의미 변화가 일어난 시기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이다. 미생물의 병인 기전을 명확하게 인지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과학적으로 막을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형 제약사의 전신이 되는 당시 제약회사들은 대부분 약국, 약재상, 혹은 화학 공장에서 시작하였다. 자연에서 얻은 원료를 수제 판매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합성 의약품을 대량생산하는 방식으로 넘어가면서 제약회사의 규모가 대형화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20세기 초반 항생제의 등장과 함께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의약품 수요 증가, 연구개발 촉진이 일어나며 대규모 임상시험을 시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회사의 크기가 커졌다.

제약 산업은 이러한 이유로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기 때문에 벤처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대형 제약사의 성장 방식을 따르지 않고,  벤처 기업으로 시작하여 대형 제약사가 된 기업도 있다.

모더나

모더나는 2010년 창립한 벤처기업으로, VC로부터 2017년까지 약 $2B의 펀딩을 받고 2018년 나스닥에 상장하였다. 심지어 이는 생명공학 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IPO였다. 2024년 3월 기준, 시가총액은 약 400억 달러에 달하며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에는 시가총액 약 1,500억 달러까지 돌파했었다. 벤처기업으로 시작하여 빠른 속도로 성장한 모더나의 사례를 알아보자.

Derrick Rossi(출처: TIME)


모더나의 비결을 알기 위해서는, 이 회사의 co-founder인 Derrick Rossi에 대해 알아야 한다. Derrick Rossi는 분자생물학 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스탠퍼드 대학교 줄기세포 연구실에서 postdoc을 하였다. 이후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부교수로서 줄기세포 연구를 하면서, 2010년 모더나를 공동창업하였다.

Derrick Rossi의 연구는 RNA를 이용하여 분화가 완료된 세포를 역분화시키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었다. 역분화된 세포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를 만드는데, 이는 우리 몸의 모든 세포로 분화하여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역분화 기술의 핵심 프로세스는 아래와 같다.


  1. 세포의 유전자를 변형하여 일반 세포를 줄기세포로 바꾼다.
  2. 줄기세포를 원하는 목적 세포로 분화시킨다.


1번 과정을 수행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 일반 세포의 DNA 자체를 변형하여 줄기세포로 바꿀 경우,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Derrick Rossi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포 안에 오래 남아있지 않아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mRNA를 주입하여 이용하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둘째, 세포 안에 주입된 mRNA는 항원으로 인식되어 면역계에 의해 파괴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면역 반응을 효과적으로 회피하는 "modified RNA"를 만들어야 했다.

모더나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Modified+RNA 혹은 Modern+RNA로 읽히는 모더나는 이러한 mRNA 수송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Derrick Rossi는 이러한 기술이 비단 줄기세포 영역에서만 사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였고, 새로운 약물과 치료제, 예방접종 방법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여 벤처 기업으로 모더나를 창업하였다.

모더나는 2018년 IPO 전까지 크게 상용화된 약물이 없었다. 매출이 거의 없었던 회사가 8년간 버티고 상장까지 할 수 있던 비결은 기술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더나는 매출 없이 어떻게 런웨이를 유지했는가?

FI 투자

Noubar Afeyan


모더나는 생명공학 특화 VC인 Flagship Pioneering의 초기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이 VC의 대표는 Noubar Afeyan으로, 현 모더나 최대주주이다. 생화학을 전공했으며 생명 공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20년까지 41개의 스타트업을 창업한 serial entrepreneur이며 이들의 총 가치가 $20B를 넘는 억만장자이다.

그는 원금 회수 이상의 목적으로 Derrick Rossi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기에, 최대주주로서 모더나를 공동 창업하였다.


SI 투자 및 파트너십

모더나의 mRNA 기술은 다양한 제약사들에서 탐내는 기술이었기에, 그들의 SI투자와 파트너십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13년 AstraZeneca와 $240M 짜리 계약을 체결하거나, Merck, Vertex pharmaceutical 등 대형 제약회사들과 파트너쉽을 확보했다. 또한 미 국방부 산하의 DARPA로부터도 자금 지원을 받았다. 즉, 모더나의 기술은 돈이 많은 회사 및 단체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핵심 기술이었다.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


대형 제약사들은 서방 세계를 위주로 분포하고 있다. 이는 현대적 의미의 의약품과 과학 기술이 서방을 위주로 태동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는 아직 "빅 파마*"가 등장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제약회사는 주로 대형 제약회사의 바이오의약품을 위탁생산하거나 (삼성바이오로직스), 기존 의약품의 바이오시밀러를 생산하는 (셀트리온)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빅 파마(big pharma): 연매출액 150억 달러 이상의 제약회사


하지만, 모더나처럼 전통적 방식이 아닌 벤처 기업으로서 빠른 속도로 성장한 대형 제약회사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방법으로 진보적인 신약개발 기술을 가진 대형 제약회사가 나올 수 있을까?

위탁생산도 분명히 좋은 방향이지만, 모더나의 사례로 비추어 보았을 때 대형 제약회사에서 탐낼 만한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단기적인 매출이 부족하더라도 펀딩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제약에 쓸 수 있는 자본이 적기 때문에, 대형 제약회사가 탐내는 핵심 기술을 보유할 수 있도록 관련 기초 연구를 꾸준히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해당 연구의 포텐셜을 알아보고 베팅해줄 만한, 생명공학 쪽 인사이트가 깊은 투자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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